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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ho ​Choi

더 테이블(The Table)​​

Prologue 

사진사는 세 번째 컷에서 멈추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식탁의 사람들은 동시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각자의 의자가 바닥을 미세하게 긁었다.
빛이 켜지기 전의 짧은 침묵은
마치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턱을 아주 조금 들었고,
누군가는 머리칼을 어깨 뒤로 넘겼고,
누군가는 손을 잔 위에 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대로 두었다.
각자의 선택은 사소해 보였지만
그 미세한 차이가 이 사진의 구조를 결정했다.
 

“하나, 둘—”

플래시가 터졌다.
순간적으로 모두의 윤곽이 하얗게 번졌다.
그 순간만큼은 각자 얼굴 위에 얹힌 것들이
본래의 모양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그걸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진이 저장되는 동안
방 안의 공기는 다시 말과 웃음으로 채워졌다.
방금 찍힌 이미지만이 잠시 동안
그 자리의 균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Chapter 1. 테이블의 리듬

처음에는 잔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가장 또렷했다.
얇은 유리끼리 맞닿는 짧은 울림이
식탁의 길이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번졌다.
그 울림은 마치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을 서로 확인하는 의식처럼 보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너무 오랜만이다.”
“다들 올 한 해 무사했네.”

문장들은 무난했고,
말투는 익숙했고,
표정들은 이미 결정된 것처럼 움직였다.
 

와인이 따르는 소리는 일정했지만
그 일정함 뒤에는 작은 조정들이 숨어 있었다.
누군가는 병의 기울기를 조심스럽게 유지했고,
누군가는 상대의 잔이 자신의 잔보다
조금 더 넘치지 않도록 눈으로 재고 있었다.
 

찢어지지 않는 침묵도 있었다.
누군가는 웃을 때 손을 입에 대었고,
누군가는 웃기 직전까지 표정을 준비한 뒤
정확한 순간에만 입꼬리를 올렸다.
웃음이 멈추는 타이밍은 더 놀라웠다.
보이지 않는 신호라도 있는 것처럼
모두 동시에 멈췄다.
 

하지만 한 사람만
그 리듬을 반 박자씩 놓쳤다.
웃음이 끝난 뒤에도 한순간 남아 있는 미소,
대화를 이어가기엔 조금 빠른 시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너무 오래 유지되는 눈빛.
 

식탁 위 말들은 서로 겹치지 않으려 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낼지
마치 무언가가 순번을 정해주는 것처럼
발언의 길이가 자연스럽게 분배되었다.
그 자연스러움 속에
누군가는 조용히 밀려나 있었다.
 

이 자리에선
모른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어디서 본 것 같아”,
“그거 요즘 유행이잖아” 같은 문장들이
빈칸을 대체했다.
그 문장들은 사실을 감추는 데 더 익숙했다.
 

테이블의 끝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거의 닿지 않는 자리가 있었다.
접시를 치우고 잔을 바꾸는 사람,
말보다 움직임으로 대화를 대신하는 사람.
그녀는 누구보다 조용했고
누구보다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필요할 때만 짧게 웃었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가면을 고쳐 쓸 필요가 없었다.
그날 테이블에서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Chapter 2. 가면의 제작법

어릴 때부터 그녀는 사진을 찍을 때
왼쪽 얼굴을 조금 더 내밀었다.
그 습관은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고,
굳이 의식할 정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다만, 오래 묵은 버릇은
얼굴의 윤곽보다 먼저 빛을 기억했다.

어떤 여자는
항상 자리를 정중앙 근처에 고르는 사람이었다.
회의실에서도, 식사 자리에서도,
누가 먼저 말하기 시작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먼저 시선이 향해야 하는지
애매한 공간을 본능처럼 차지했다.

그녀의 가면은 중심에서 만들어졌다.
중심에서 멀어지는 순간,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또 다른 여자는
늘 조용했는데,
그 조용함은 성격이라기보다
집안에서 오래도록 유지해온 방식에서 온 것이었다.
감정은 빠르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고,
웃음은 길게 끌면 안 되고,
놀라는 기색은 되도록 줄여야 한다는
아주 오래된 규칙들.

그녀의 가면은 얇고 단정했다.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였지만
실제로는 가장 잘 찢어지지 않는 종류였다.

한 사람은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다.
너무 열심히 보이지 않아야 하고,
너무 앞서 나가도 안 되고,
너무 조용해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자리에서
조금 늦게 웃고,
조금 늦게 잔을 들고,
조금 늦게 리액션을 보였다.
그 미세한 지연이
자연스러움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인위적인 가면은
언제나 자연스러움을 흉내 낼 때 만들어진다.

그리고 누군가가 있었다.
아주 튀는 사람도 아니고,
아주 조용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겉으로 보기엔 다른 이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끝이 묘하게 짧고,
누군가는
그녀의 미소가 반 박자 빠르며,
누군가는
가끔 잘못된 순간에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가면은
주변을 참고해 이어붙인 것이었다.
반짝이는 부분은 모두 타인의 것이었고,
흐릿한 부분만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

빛이 정면에서 비출 때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측면에서 들어오는 조용한 조명 아래에서는
가면의 경계선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법이었다.

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자기 가면이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만은 알았다.

그 가면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서 벗겨질 수 있다는 것을.

 

Chapter 3. 균열

그날의 테이블에서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그녀의 손목이었다.
잔을 들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각도는
조용하지만 확실한 진동처럼 보였다.
누구도 그것을 큰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녀만이 그 떨림을 숨기려고 더 힘을 주었다.
 

웃음의 길이도 조금씩 달라졌다.
다른 사람들의 웃음이 자연스럽게 끝날 때
그녀의 웃음은 반 박자 늦게 남았다.
그 짧은 여운이 방 안에 남을 때마다
의미 없는 무게가 늘어나는 듯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눈치챘고,
그것이 들키지 않기를 바랐다.
 

말 가운데 끼어드는 타이밍도 점점 어긋났다.
대화의 결이 살짝 바뀌는 순간,
이미 지나간 화제를 붙잡는 손짓처럼
그녀의 말은 늘 허공을 향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웃어 넘기거나
고개만 끄덕이며 건너뛰었고,
그녀 역시 스스로 물러나듯 입술을 다물었다.
 

가면은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들떠 보였다.
그녀의 가면은 특히 밝은 조명 아래에서
가장 먼저 경계가 드러나는 종류였다.
조명이 움직일 때마다
얼굴의 얇은 표면이 한 겹씩 떨렸고,
그 떨림은 그녀의 표정과는 관계없는
독립적인 움직임처럼 보였다.
 

누군가가 자리에서 잠시 일어났을 때
그녀는 곧바로 그 빈자리를 메웠다.
대화를 잇기 위해서였는지,
다시 중심에 포함되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의 성급함은 너무 분명해서
가면의 끈이 조금 느슨해진 듯 보였다.
 

사진을 찍을 때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를 올리는 속도는 자연스러웠지만
눈매에 올라타는 감정은 따라오지 못했다.
플래시가 터지기 직전,
가면의 특정 부분만 미세하게 굳어 있었고
그 굳음은 오직 카메라만이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얇은 긴장으로 남았다.
 

누군가는 그 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별다른 표정도 지었지 않았고
대화에 끼어들지도 않았지만
조용히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가면이 어긋나는 데는 소리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이미 사전에 알고 있는 사람처럼.
 

밤이 깊어질수록
그녀는 점점 더 말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 말들은 다 자기에게서 조금씩 떨어져 나와
바닥에 흩어지는 조각들처럼 들렸다.
그녀는 말을 통해 자리를 붙잡으려고 했고
말들은 그녀를 조금 더 벗어나
가면과 얼굴 사이의 틈을 넓혔다.
 

누구도 그녀에게 직접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 안에는
어떤 공통된 판단이 천천히 굳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었지만
어딘가에서 ‘이미 결정된 무언가’가
천천히 형태를 갖추는 중이라는 것만은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가면은
아직 완전히 벗겨진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금이 간 가면은
다시 원래의 표면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밤의 공기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Chapter 4. 가면이 벗겨지는 밤

그날의 공기는, 식어가는 음식보다 빨리 굳어졌다.
누군가가 자리에서 살짝 몸을 돌리자,
식탁 양쪽으로 퍼져 있던 대화의 흐름이 한순간 끊겼다.
말은 끊어졌지만, 침묵은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기 위해
조금 더 고개를 숙였을 뿐이었다.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작은 울림이 가벼운 유리잔의 떨림 때문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손끝 긴장이 전해진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문제의 발언은 누구의 것이 아닌 것처럼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마치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었던,
조심스러운 비판의 형식을 갖춘 문장이었다.

“너… 조금 무리하는 것 같아.”

그 말은 어떤 감정도 동반하지 않고 있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잔인하게 들렸다.
 

다른 이들이 바로 반응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듣지 못한 척했다.
나쁜 의도 없이 던진 말처럼 보이도록
각자의 표정을 정리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말들은
그 첫 문장이 ‘허락’해준 것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 가끔 좀… 너무 열심히 보일 때가 있어.”
“본인도 알잖아, 분위기라는 게 있는데.”
“그런 자리가 아무나 편하게 어울리는 건 아니니까…”

모두가 웃는 얼굴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되돌릴 수 없는 선을 이미 건너고 있었다.
형식은 예의였고, 내용은 고립이었다.
 

그녀의 가면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어딘가 금이 간 듯 보였다.
그 금이 진짜인지, 혹은 빛의 방향 때문인지
아무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금이 보였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는 이미 테이블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녀는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자기에게 충분한 자리를 찾지 못했다.
말이 나오기 전에 여러 번 돌아앉아
마침내 바깥으로 빠져나가 버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아무도 그 말을 잡지 않았다.
 

대화는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방금 벌어진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전보다 더 밝은 목소리들이 테이블을 채웠다.
사소한 파티 얘기,
서로가 다녀온 장소들,
요즘 재미있다는 프로그램.

가면은 원래 그럴 때 제일 자연스러워졌다.
누구 하나 벗겨진 뒤에는 특히 더.
 

식탁 끝에서 접시를 정리하던 하녀만이
그 장면을 모두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말 사이로 떨어지는 호흡,
어색하게 들뜨는 미소의 속도,
말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방향을
한 번에 읽어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가면이 벗겨진 건 단 한 사람뿐이 아니었다고.
그날 밤,
벗겨지지 않으려고 더 꽉 눌러쓴 얼굴들이
오히려 더 선명해 보였다고.

 

식탁 위의 촛불이 거의 다 타들어가면서,
방 안의 공기가 아주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의 높이는 초의 길이만큼씩 줄어들고 있었다.
 

와인은 세 번째 병으로 넘어갔다.
잔을 비우는 속도는 조금씩 어긋났고,
그 어긋남이 미세한 균열처럼 대화 사이에 스며들었다.
누군가는 잔을 너무 자주 들었고,
누군가는 거의 비어 있는 잔을 다시 채우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이 작은 차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기 있는 대부분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다.

“아까 이야기… 조금 이상했어.”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잔 위로 비치는 촛불처럼 흔들렸지만
그 흔들림은 친절이 아니라 계산에 가까웠다.
누가 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말투.
그러나 정확히 겨냥된 문장.
 

다른 사람이 곧바로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그런 말을 할 위치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표현은 정중했지만
정중함 아래에 단단한 의도가 있었다.
말투는 낮추어졌고,
조금 더 부드러워진 만큼
말의 끝은 더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웃으려다가 멈췄다.
웃음이 입술에서 조금만 더 올라갔으면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멈춤은
너무 명확했다.
그녀의 가면이 처음으로
제 위치를 잃은 순간이었다.
 

“나는 그냥… 분위기를 살리려고—”

그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다른 누군가가 부드럽게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건 네가 안 해도 될 것 같아.
우리가 다 잘 아니까.”

여전히 친절했고, 여전히 웃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무언가를 ‘정리하는’ 사람들의 웃음이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짧았지만, 식탁을 가로질러
한 사람의 몸에만 무겁게 걸렸다.
그 무게가 어디에 닿았는지
모두가 동시에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다시 잔을 들었다.

“그냥… 네가 조금 선을 넘은 것 같아서.
다들 불편했지?”

‘모두’라는 단어가
아주 느리게 식탁 끝까지 흘러갔다.
그녀는 그 단어의 앞에,
자신만이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가면은 이제 완전히 뒤로 밀려 있었고,
잔잔하게 유지되던 리듬들은
모두 그녀를 제외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정확히 맞춰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 템포에 더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
 

“괜찮아. 이해해.
네가 노력하는 건 알아.
근데… 가끔 그 노력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

그 문장은 칭찬처럼 시작해
배제로 끝나는 방식이었다.
아무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를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정확한 높이의 친절로
서서히 문을 닫아 걸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조차
대화의 리듬과 맞지 않았다.
너무 빠르게, 혹은 너무 느리게.
어디에도 닿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식탁 위의 남은 음식은
손끝으로 거의 건드려지지 않았다.
모두가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가면이 벗겨진 뒤에는
더 이상 어떤 행동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촛불이 마지막으로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멎을 때쯤,
이 밤은 이미 결말을 가지고 있었다.
표면에서는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오늘,
한 사람의 가면이 떨어졌다는 것을.

 

Chapter 5.  가면을 쓰지 않은 자

그녀는 식탁의 가장자리에서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거의 닿지 않는,
움직임만 필요한 자리에서.

그녀의 손은 빠르지도 않았고,
느리지도 않았다.
단지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만
흐르는 물처럼 움직였다.

누군가 넘긴 잔, 떨어진 포크,
자리에서 밀린 냅킨.
그녀는 그것들을 조용히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녀는 웃지 않았다.
웃음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웃음으로 유지되는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웃음이 균열을 가리는 데
너무 많이 쓰이는 곳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라
얼굴 사이의 공기를 보았다.

누가 어느 순간에 숨을 삼키고,
누가 어느 순간에 눈을 피하고,
누가 말을 이어가기 전에 혀끝으로 입술을 적시는지.

다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공기는 하나도 닮아 있지 않았다.
각자의 긴장, 허영, 기대, 불안이
얇은 막처럼 겹쳐져 있었다.

그녀는 이 방의 사람들보다
더 오래 공부했고,
더 넓은 도시들을 보았고,
더 다양한 언어들 속에서 살았지만
그 이야기를 꺼낼 기회는 없었다.

이 자리에서는
말보다 가면의 매끄러움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아주 빨리 이해했다.
그래서 말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 가면이 생기지 않으니까.

그날 밤,
가면이 벗겨지는 소리를
가장 먼저 들은 사람도 그녀였다.

말끝이 너무 빠르게 떨리고,
웃음이 너무 늦게 돌아오고,
시선이 오래 머물지 못하고
손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소리들.

그 소리들은
말로 표현되기 전에 이미
공기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왜 자꾸 이상한 얘기를 해?”
“그런 건 네가 먼저 말할 자리가 아닌데.”
“요즘 좀… 과한 것 같아.”

정중한 말들은
정중하지 않은 목적으로만 쓰였다.

그녀는 그 말들 사이에서
가면이 찢어지는 방향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때도 침묵했고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깨진 잔 하나를 재빨리 치웠다.

깨진 유리는 흔히 나는 사고였고
찢어진 가면은 자연스러운 질서였다.

그녀는 어느 쪽도 놀라워하지 않았다.

자리를 정리하며 그녀는 생각했다.

이 방의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들은 그 가면이
자기 얼굴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가면은 얼굴보다 더 단단해졌다.

그녀는 잠시 식탁을 바라보았다.
음식은 이미 식어 있었고,
잔은 반쯤 비었고,
크리스마스 장식은 과하게 반짝였다.

그녀만이,
가면과 얼굴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 방에서는
어떤 가면보다 더 뚜렷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Epilogue 사진으로 돌아가다

플래시는 단 한 번 터졌을 뿐이었다.
그 짧은 흰빛이 방 안의 모든 얼굴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웃음은 얼어붙었고, 손의 위치도, 고개의 각도도
빛 속에서만큼은 서로 구분되지 않았다.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떤 얼굴은 조금 더 매끄럽고,
어떤 얼굴은 아주 가느다란 균열이 이마 쪽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사진 밖의 누군가뿐이었다.
 

한 장의 이미지 속에서는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
누가 늦게 웃었는지,
누가 타인의 이야기를 따라갔는지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난 것처럼 보일 뿐.
 

시간이 지나도 사진의 구도는 변하지 않았다.
테이블 위의 잔은 여전히 절반쯤 비어 있었고,
초는 타다 남은 길이 그대로였고,
각자의 웃음은 흘러내리지 않은 채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누구도 자신의 얼굴이
그날의 빛을 어떻게 반사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많은 말이 오갔지만
사진만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찍힌 순간의 질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거기에서 이미
누가 어떤 얼굴로 앉아 있었는지가
결정되어 있었다는 듯이.
 

그리고 이제 보면
그 사진 속에는
흰 얼굴도, 검은 얼굴도,
가면을 벗고 있는 얼굴도 없었다.
그저 비슷한 표정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아비투스는 얼굴의 색이나 미소의 넓이가 아니라,
그 표정이 얼마나 오래
어색하지 않게 유지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다.
 

사진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사진 속 사람들만 몰랐을 뿐이다.
 

Draft for archival purposes.
A revised and expanded version will be prepared for publication.
EN version forth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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