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eho Choi
틈 (Fracture)
새 집으로 이사 온 날, 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마음속에서 작은 돌 하나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이 집이 자신의 능력으로 산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머니는 지나치게 깨끗한 집이 자신을 더 드러내게 만들 것 같다는 불안함을,
아들은 텅 빈 방 안에서 생각의 방향이 흐트러지는 느낌을,
딸은 밝아야만 이 집에서 안전할 것 같다는 압박을
각자 조용히 느꼈다.
그날 밤, 아버지는 “피곤해”라고 말하며 첫 거짓말을 했다.
그 말 사이로 아주 작은 틈이 생겼다.
아버지는 요즘 집에 들어가기 전 차 안에서 몇 분씩 앉아 있었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침묵이 자신을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내는 말수가 줄었고, 아이들은 방문을 닫았다.
아버지는 자신이 어느새 집 바깥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깼다.
완벽한 고요는 오히려 압박이었다.
싱크대 위 접시 하나, 식탁 위 물자국 하나가 지나치게 크게 보였다.
“내가 예민한 거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예민함을 놓을 수 없었다.
아들은 방 안에 있으면 생각의 울림이 너무 커서 어디에도 시선을 둘 수 없었다.
일기는 난해해졌고, 말은 줄었다.
가족의 목소리는 멀리서 울리는 전파처럼 단절돼 들렸다.
딸은 더 밝아지는 법을 배웠다.
집안 분위기가 무거워질수록, 자신이 조금 더 웃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밝음은 어느 순간 피곤한 표정으로 굳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회사 근처에서 우연히 옛 동창을 다시 만났다.
그녀의 말투는 편안했고, 그 편안함은 비밀이 되었다.
“거래처 미팅”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쉽게 입에서 나왔다.
그는 그것을 외도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저 잠시 숨을 고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정리를 멈출 수 없었다.
정리할 것이 없어도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남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서랍 깊이 숨겨둔 실크 스카프를 꺼내 접을 때만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남편 옷깃에서 낯선 향이 스칠 때, 손끝에 떨림이 왔다.
아들은 영어 시간에 잠시 멍하니 있었을 뿐인데, 교사가 그의 팔을 거칠게 잡아 흔들었다.
그 감각은 오래 남았다.
집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일 없어.” 그 말은 텅 빈 소리로 방 안에 떨어졌다.
딸은 막역한 사이라 믿었던 친구가 가장 아끼던 필통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가 봐도 자신의 것이었지만 친구는 태연하게 “내가 산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은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금처럼 딸의 마음을 갈랐다.
그 일도 집에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 집에서 자신의 말은 끝까지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집보다 바깥이 더 편해졌다.
문을 열 때 설렘도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다.
그 무감각이 더 위험한 변화였다.
아버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괜찮아.”
그 말이 균열의 방향을 완전히 정했다.
어머니에게 정리와 불안은 이제 구분되지 않았다.
문틈의 각도, 식탁의 물결무늬, 책의 수평…
모든 것이 마음을 건드렸다.
아들의 문틈 아래 그림자가 흔들릴 때 두드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딸이 색연필을 줄맞춰 놓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보는 듯해 가슴이 내려앉았다.
완벽한 집 안에서 어머니는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네 사람이 함께 먹는 저녁.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수저 부딪히는 소리만 방 안에서 맴돌았다.
식사가 끝나자 네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방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들이 그날의 대화였다.
그날 오후, 딸은 엄마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의 표정은 말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릇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딸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손끝이 미끄러졌고, 하얀 접시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
집 전체가 멈추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딸에게 다가온 그녀는 말 없이 딸의 팔을 붙잡았다.
손은 짧았지만 세게 조여 들었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집이 어지러워지잖아…”
그 목소리는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불안이 터져나오는 소리였다.
“엄마, 아파… 그만해…”
그 말에 어머니는 손을 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발치에는 깨진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딸은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갔고,
아들은 소리를 들었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시각, 다른 사람에게서 온 와인 사진을 보고 있었다.
밤이 깊자 네 사람의 문이 하나씩 닫혔다.
아버지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공기의 온도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부엌 타일 위에는 희미한 가루 자국만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침대에 앉아 방금 딸을 붙잡았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은 일기에 한 줄을 남겼다.
“방이 가장 안전한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것도 여기인 것 같다.”
딸은 이불 속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지.”
네 사람은 각자 살아 있었지만
이 집은 더 이상 가족이 사는 집이 아니었다.
단지 네 개의 방과
그 사이에 생긴 길고 깊은 틈만이 남아 있었다.
終
Draft for archival purposes.
A revised and expanded version will be prepared for publication.
🔗 Fracture_English_Translation